박종철군 범국민추도식

`박종철군 범국민추도식`에 대한 경찰의 원천봉쇄로 전국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 경찰 799명 연행

박종철의 유해는 1987년 1월 16일 사실상 경찰에 의해 화장되었고, 임진강에 뿌려졌다. 아버지 박정기는 ‘종철아! 잘 가 그래이 …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라고 깊은 한을 표현했다.

대학생들은 17일부터 24일까지 ‘박종철 군 추모제’를 지내고, 그의 무참한 죽음을 위로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종교계와 사회단체도 사람이 고문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시국을 개탄하며, 다양하게 항의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박종철의 시신을 검안한 의사를 협박하는 등 은폐 작업을 중지하지 않았다.

시민사회의 들끓는 여론을 결집하여 「고문 및 용공조작 저지 공동대책위원회」(고문공대위)가 추모행사를 개최하기로 했다. 고문공대위는 「민주화청년연합」 의장 김근태가 박종철이 사망한 건물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사실을 폭로한 것을 계기로 1985년 11월 결성되었다. 그런데 고문공대위의 역량은 충분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회단체와 재야 그리고 야당 등이 참여하는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2월 7일 명동성당에서 ‘고 박종철 군 국민추도회’를 열기로 했다.

경찰은 국민추도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명동성당 일대는 물론 학생과 시민이 모일만한 장소들에서 검문·검색을 했다. 철통 봉쇄를 했지만, 명동성당에서는 800여 명이 모여 추도회를 열었다. 이날 부산, 광주, 대구, 인천 등 전국의 주요 도시들에서도 크고 작은 추모행사가 개최되었다.

아카이브에서 보기